의지·열정 문제가 아닌 성향 문제
“이건 내가 못난 게 아니었다” 오늘은 실패하고 나서야 알게 된 내 성격의 한계에 대해 소개할 예정이다.

실패한 뒤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때는 끝까지 몰아붙였고,
포기하지 않았고,
할 수 있는 만큼은 다 했다고 믿었다.
그래서 실패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결론은 이것이었다.
“내가 못나서 그렇다.”
“의지가 부족했다.”
“끝까지 버틸 사람이 아니었다.”
그 말은
상처를 설명해주는 대신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조금 더 차분해졌을 때,
나는 다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혹시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성격의 한계였던 건 아닐까?”
끝까지 버티지 못한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었다
그 실패를 떠올리면
지금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게으르지 않았다.
대충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신경 쓰고, 더 고민하고, 더 지쳤다.
문제는
그 방식이
나의 성향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사람을 상대해야 했고
빠른 판단과 강한 밀어붙임이 요구됐고
감정을 눌러두고 성과를 우선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혼자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고
결정 전에 충분히 생각해야 했고
감정 소모가 누적되면 회복이 느린 사람이었다
이건 나태함이 아니다.
기질에 가까운 성향이다.
그런데 나는
그 성향을 고쳐야 할 단점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계속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도 못 버티면 문제지.”
“다들 하는데, 왜 나만 힘들어하지?”
그 결과는 뻔했다.
버티긴 했지만,
점점 나 자신이 닳아갔다.
실패 후에야 보인 건, ‘부족함’이 아니라 ‘부적합’이었다
실패는
항상 나중에 정리된다.
그 안에 있을 때는
그저 힘들 뿐이고,
밖으로 나와야
비로소 구조가 보인다.
돌아보니
그 선택은
애초에 나에게 최적화된 길이 아니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속도
나에게 맞지 않는 소통 방식
나에게 맞지 않는 긴장 상태
그 안에서의 실패는
능력 부족이 아니라
지속 불가능한 환경에 오래 있었던 결과였다.
하지만 나는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의 노력이
헛된 것처럼 느껴질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패를
‘내가 못났기 때문’으로 정리해버렸다.
그건
현실적인 분석이 아니라
가장 쉬운 자책이었다.
“이건 내가 못난 게 아니었다”라고 말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이 문장을
처음 마음속으로 말했을 때,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다.
“이건 내가 못난 게 아니었다.”
그 말은
나를 합리화해주지도,
실패를 지워주지도 않았다.
다만
불필요한 자책 하나를 내려놓게 해줬다.
그제야 나는
실패를 이렇게 다시 정의할 수 있었다.
이건 도망이 아니라, 한계에 도달한 결과였고
이건 패배가 아니라, 부적합을 확인한 과정이었고
이건 무능이 아니라, 성향을 무시한 선택의 대가였다
이 정의는
나를 느슨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 선택을 훨씬 현실적으로 만들었다.
이제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이 질문부터 한다.
이건 의지로 버텨야 하는 일인가
아니면 성향에 맞게 굴러갈 수 있는 일인가
이 질문에
“버텨야 한다”는 답만 나온다면,
나는 한 번 더 생각한다.
실패는
항상 우리에게
가장 가혹한 해석을 먼저 들이민다.
“네가 부족해서야.”
“다른 사람들은 다 해내잖아.”
하지만 모든 실패가
개인의 결함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어떤 실패는
성향을 무시한 채 버텼다는 증거다.
그걸 인정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용기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 인정은
“나는 뭐든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환상을
내려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환상을 내려놓고 나면,
이상하게도
삶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
이제 나는 안다.
의지로 되는 일과
성향이 맞아야 가능한 일은 다르다는 걸
그리고 실패하고 나서야 알게 된
이 성격의 한계는
나를 제한하는 낙인이 아니라,
앞으로의 선택을 덜 잃어버리게 만드는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그때의 나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너는 못난 게 아니었어.
다만, 너답지 않은 자리에서
너무 오래 버티고 있었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