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왜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을까 오늘은남들 조언을 그대로 믿었다가 망한 경험들에 대해 소개할 예정이다.

사람이 실패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할 때가 많다.
나의 판단이 틀려서라기보다,
남의 말을 너무 쉽게 믿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 조언들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말들이
나의 상황, 나의 성향, 나의 시점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걸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차분하지도, 단단하지도 않았다.
그 조언은 너무 ‘그럴듯’해서 의심할 틈이 없었다
그때 들었던 조언들은 하나같이 익숙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말들이었고,
성공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반복되던 말들이었다.
“지금 고생하면 나중에 편해진다.”
“다들 그렇게 시작했다.”
“버티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
이 말들의 공통점은
틀릴 수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들을 들으며 안심했다.
지금 불안한 건 당연한 과정이고,
지금 힘든 건 내가 잘 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의심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그 조언을 한 사람들이
이미 내가 가고 싶어 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결과’를 보고
그 말의 ‘조건’을 보지 못했다.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지원을 받으며,
어떤 성향으로 그 말을 할 수 있었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조언은 항상 단순한 문장으로 전달되지만,
그 문장 뒤에는
복잡한 전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
문제는 조언이 아니라, 내 상황을 지우고 적용한 방식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신호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언대로 했는데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노력은 점점 나를 소모시켰다.
그런데도 나는 멈추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조언을 의심하는 순간,
내가 지금까지 한 선택들까지
모두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 내가 부족한 거겠지”
“조금만 더 하면 달라질 거야”라는 말로
모든 문제를 나에게 돌렸다.
이게 가장 위험한 지점이었다.
유행하는 조언의 가장 큰 함정은
실패의 책임을 전부 개인에게 넘긴다는 점이다.
조언은 언제나 옳고,
안 되면 내가 문제인 구조.
그렇게 나는
환경을 바꾸지 않았고,
방식을 점검하지 않았으며,
조언 자체를 재검토하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필요한 건
조언을 더 열심히 따르는 게 아니라,
“이 말이 지금의 나에게도 맞는가?”를 묻는 일이었다.
실패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조언은 ‘선택’이지 ‘정답’이 아니라는 걸
결국 나는
그 조언이 약속했던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남은 건
지친 몸과 흐릿해진 자신감,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허탈감이었다.
실패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그 조언은
나에게 해를 끼치려고 한 말이 아니었고,
누군가에게는 실제로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이
나에게까지 맞을 필요는 없었다.
조언은 정답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인데,
나는 그걸 유일한 길처럼 받아들였다.
그때 왜 의심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혼자 판단하는 게 두려웠고,
실패의 책임을 혼자 지는 게 무서웠기 때문일 것이다.
남의 말을 따르면
결과가 나빠도
“그래도 다들 이렇게 하라고 했잖아”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택의 책임은
결국 나에게 그대로 돌아왔다.
이 글은
조언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조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도 우리는
수많은 조언 속에 살고 있다.
영상으로, 글로, 경험담으로
“이렇게 하면 된다”는 말들이
끊임없이 흘러온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말들 앞에서
이 질문을 먼저 던진다.
“이 말은 어떤 사람에게,
어떤 상황에서 통했을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조건에 해당하는가?”
조언을 의심하는 건
비뚤어진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인생에 책임을 지겠다는
가장 현실적인 자세에 가깝다.
그때 그 말을
조금만 더 의심했더라면
실패하지 않았을까?
아마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실패의 이유를
남의 말이 아니라
나의 선택으로 이해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다음 선택을 할 때
생각보다 크게 작용한다.